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 (문단 편집) == 배경 == 전쟁의 발단은 여느 이웃나라의 앙숙 관계처럼 영토나 국경 문제로 인한 영토분쟁이 아닌 바로 두 나라의 국경 사이에 끼어 있었던 [[우루과이]]의 독립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본래 우루과이는 이웃국가인 아르헨티나와 함께 스페인의 식민지인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의 일부였으나 중남미 일대의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들이 현지 세력의 독립운동으로 붕괴되는 틈을 노려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 역시 18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월 혁명으로 스페인에서 독립을 선언하였다. 당시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의 최동단주였던 반다오리엔탈(Banda Oriental) 역시 독립운동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반다오리엔탈의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호세 아르티가스 역시 5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 1811년 반다오리엔탈에서 봉기를 일으켜 독립을 선언하고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에 가담하였다. 하지만 독립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는 연합주를 구성하던 각 주들끼리 서로 반목하게 되었는데 강력한 중앙집권주의를 지향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앙정부에 반발하여 1814년 아르티가스의 주도로 반다오리엔탈, 코리엔테스, 산타페, 엔트레리오스 등 연합주의 동부 지역이 연방동맹(Liga Federal)을 결성하여 중앙정부에 맞섰다. 연방동맹의 등장은 남쪽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뿐만 아니라 연방동맹 북쪽에 위치한 (아직까지 브라질을 가지고 있던)포르투갈의 불안감을 샀고 이에 포르투갈은 브라질로 공화주의가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고 [[히우그란지두술]] 등 브라질 남부 지역의 지배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1816년 전격적으로 반다오리엔탈을 침공하였다. 4년 간의 전쟁 끝에 독립군 잔당을 완전히 몰아낸 포르투갈은 1820년 정식으로 반다오리엔탈을 자국의 일부로 병합하고 그 자리에 시스플라티나(Cisplatina) 주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1822년 포르투갈의 왕세자 [[페드루 4세|동 페드루]]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브라질 제국]]을 세우자 시스플라티나 역시 새로 독립한 브라질 제국의 1개 주가 되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아오며 언어, 역사, 문화 등 모든 것이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과는 판이하게 달랐는지라 정작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브라질의 지배를 결사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브라질의 지배에 대항하는 독립군 세력들이 들고 일어나 브라질군을 공격하며 시스플라티나 주는 브라질군과 독립군 간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독립군 세력들은 군사력이나 인구 수에서 브라질에게 열세였고 이에 독립군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였다. 처음에는 연합주는 반다오리엔탈이 포르투갈군에게 침공당한 것을 보고 "기껏 뛰쳐나가더니 꼴좋다"는 반응을 보이며 관망하고만 있었는데 나중에 브라질 해군이 [[몬테비데오]] 항을 통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코앞의 [[라플라타 강]]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을 보고 강한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실제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는 라플라타 강을 사이에 둔 바로 지척으로 두 도시 사이에 실질적인 교류도 수운을 통해 손쉽게 가능했다. 또 반다오리엔탈이 브라질에게 갈려나간 것을 보고 겁을 먹은 연방동맹의 다른 주들이 연합주에 재가입하자 연합주는 마지막 남은 반다오리엔탈을 되찾고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라플라타 강을 보호하기 위해 독립군을 지원한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